종을 울려라!
정말 종이 울렸을까?

모든 땅 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를 공표하라
Proclaim LIBERTY throughout all the land unto all the inhabitants thereof

레위기 25:10, 자유의 종에 새겨진 글귀

1775년 4월 영국군이 메사추세츠 민병대를 급습했다. 전쟁이 시작되었다.
렉싱턴 콩코드 전투가 끝난 직후 제 2차 대륙회의(Second Continental Congress)가 열렸다. 여기서 조지 워싱턴 버니지아 대의원이 총사령관에 임명됐다. 프랑스 무기를 든 민병대들이 영국군과 치열하게 싸우는 동안 대륙회의는 의장이었던 존 핸콕을 중심으로 영국으로 청원서를 보냈지만 조지 3세는 수령조차 거부했다. 보스턴 앞 바다에 티를 버릴때만 해도 독립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식민지인들이 이어지는 세금제도와 식민지정책에 대한 불만들이 쌓여 반역의 꿈이 커지면서 사실상의 식민지 주 연방의회 역할을 했던 대륙회의는 “독립”으로 방향을 굳혔다.

1775년 7월 4일 대륙회의는 독립 선언문을 채택하고 서명과 비준을 받기 위해 13개 주의 입법부로 보냈다. 그리고 7월 8일 대국민 선언처럼 독립선언문이 낭독되는 자리에서 자유의 종을 울렸다고 전해지지만, 사실 이 종의 타종에 대한 현대의 기록들이 남아있지 않아서 그냥 평상시처럼 울린 종소리 였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의견이다. 그후 영국과 7년 간의 전쟁 끝에 독립국으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고, 독립 선언 제 1주년 축하 행사는 필라델피아에서 즉흥적으로 열렸을 뿐 축하행사가 보편화된 것은 1812년 전쟁 이후 부터였다.

사실 필라델피아에 있는 자유의 종은 독립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주문은 필라델피아 시의 신축 종탑에 걸어둘 목적으로 1752년에 이루어 졌으며 영국에서 제작되었다. 불량품이었는지 첫 번째 타종 후 금이 갔다고. (아이를 넣지않았기 때문이다 -에밀레 종 장인) 식민지 현지에서 수리를 맡은 존 패스 (John Pass)와 존 스토우 (John Stow)가 자화자찬의 의미로 종에 자신들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다시 제조된 종은 깨지지는 않았지만 소리가 좋지 않아서 사람들의 머리가 깨…. 다시 수리.

Image by skeeze from Pixabay 

또 다시 수정을 거친 종은 독립전쟁에도 살아 남아 중요한 일마다 제 몫을 다했으며, 1837년 노예제도 폐지론자들이 ‘자유의 종’이라 이름 붙이고 나서는 미국의 심볼이 되었다. 수리도 부실했던지 1846년 조지 워싱턴의 생일을 기념하면서 타종하다 또 다시 심하게 금이 가서 이제는 소리가 나지않는 종 모양 장식물이 되어 전시되고 있다. 소유권은 여전히 필라델피아 시라고. (종은 역시 메이드 인 코리아)

그래서 선물했다.(아님)
미국 독립 200주년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한국에서 미국으로 보낸 우정의 종. 샌 피드로 항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있다.

Korean Bell of Friendship

참고로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은 미국 독립 100주년을 축하하는 프랑스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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