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여름 밤, 무료한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무더운 날씨 속 한 줄기 소나기 같은 공연을 다녀왔다. 여름 방학동안 학교 영어선생님은 지역 곳곳에서 펼쳐지는 셰익스피어의 연극 중 하나를 보고 오라는 ‘품위있는’ 숙제를 내주셨다. 작년에는 UCI New Swan Shakespeare Festival에서 주최하는 연극 중 하나를 봤었더랬다. 꽤 아담하고 정감있는 야외 소극장에서 나름 괜찮은 무대장치와 조명, 학생들의 준비된 연극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이 곳도 강추…티켓 예매는 필수이다. 올해는 다른 곳에서 열리는 ‘공짜’ 연극은 혹시 없을까 열심히 스크롤을 내리던 중 내 눈에 걸려든 그 곳, 심봤다! 알리소 비에호 Soka University에서 ‘Shakespeare Under the Stars’라는 연극 행사를 한다는 것이 아닌가!
무엇보다 ‘공짜’라는 점이 연극을 보기도 전에 이미 무제한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딸 덕분에 문화생활하러 온 가족 츨동, 김밥 한 줄과 물 한병씩 장전해서 연극 구경에 나섰다.
Soka University는 남가주에 살면서 이름은 들어봤지만 가본 적은 없었는데, 학교 입구부터 왠지 학교 전체를 감싸는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이 좋았다.

주차를 하고 교내에 들어서자 반가운 안내 배너가 나타났다. 그리고 곧 눈앞에 펼쳐진 인공호수는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입구에서 호수 가운데 놓인 징검다리를 통해 학교 내부로 연결되는데, 걸어가는 동안 분수대에서 뿜어내는 시원한 물줄기와 작은 낙차를 이용해 떨어지는 물소리가 마치 계곡에 온 듯 상쾌한 청량감을 북돋워주었다.

여기서 잠깐, Soka University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자. 정확한 학교 명칭은 Soka University of America로서 1987년에 일본인 Lisada Daisaku에 의해 설립된 사립대학교이다. 일본 본토의 Soka University of Japan의 자매학교로서, 2019년 Liberal Arts College 미 전국 랭킹 22위를 기록한 작지만 강한 학교이다. 전교생이 약 500명에 못 미치는 작은 규모의 학교로서 평화주의, 인권, 자연과 인류의 창조적 공전을 모토로 한다. 교수대 학생비율이 약 8:1을 이루고 있으며 학생의 약 85%가 4년 안에 졸업을 한다고 한다. 이 학교의 특징은 전교생이 반드시 제2 외국어를 배워야 하며 그 언어가 공식언어인 나라에서 교환학생으로 의무적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 프로그램이 특징이다. 학부 전공으로는 Environmental Studies, Humanities, International Studies, Social & Behavioral Sciences 가 있고, 학비는 1년에 약 $31,076정도이다.
공연날이 평일 저녁인데도 불구하고 연극을 보러 온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꽤 많았다. 캠핑의자와 간단한 스낵류와 담요등을 들고 마치 동네 마실가듯이 이웃끼리 또는 친척끼리 단체로 오는 사람들도 보였다.

관객들이 자리를 잡고 와인이나 맥주를 가볍게 마시며 샌드위치나 과일을 먹으면서 담소를 나누는 동안 배우들은 무료 공연의 취지를 설명하고 공연에 도움이 될 도네이션을 독려한다. 꽤 많은 사람들이 십시일반 기부를 한다. 기부를 한 사람들에게는 래플티켓을 나눠주고 공연이 끝나면 추첨을 하는데 상품은 작은 선물들 또는 ‘배우들과 기념사진 찍기’이다.

공연장 한 켠에서는 수익금 마련을 위해 관련 상품도 다양하게 팔고 있었다. 과연 누가 살까 싶었는데, 저녁이 되어 점점 쌀쌀해지자 미처 대비를 못한 관객들이 티셔츠와 담요를 꽤 구입하는 모습이 보였다. 매 공연마다 8,000불이 넘는 비용이 든다는 웹사이트 설명을 읽었는데, 강요를 하지 않으면서도 다양하게 부족한 공연 비용을 마련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올해의 연극은 “The Comedy of Errors”…한 마을에 태어난 쌍둥이 형제들과 시종들이 25년전 난파된 배로 인해 서로 헤어져 살던 중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같은 마을에 나타나 마을 전체가 일대 혼란에 빠져 한바탕 소동을 벌이는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배우들의 열연으로 점점 빠지는 연극 속에 노을은 지고 밤이 깊어갈수록 조명을 받는 작은 연극무대에 점점 집중이 되었다.

처음에는 한국어로 하면 “..하시옵소서”체의 영어때문에 잘 안들리던 대사들이 내용에 적응되면서 대강 애둘러 들리기 시작했다. 영어가 잘 안들려도 배우들의 풍부한 표정과 열연으로 그리고 소박하지만 최선을 다해 16세기 시대를 풍자한 의상 및 무대 장치를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그 시간은 충분히 풍성했다.
매년 여름마다 미국 전역의 대도시 주변에서는 정부와 개인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무료 야외 콘서트 및 퍼포먼스가 곳곳에서 열린다. Shakespeare 야외 공연은 여름철마다 열리는 연례 무료 인기 행사 중 하나로 꼽히며, 이 ‘Shakespeare Under the Stars’ 행사는 남가주의 경우 LA 다운타운 야외 음악당부터 헌팅턴 비치 피어까지 열리는, 이미 유명한 ‘Shakespeare by the Sea’공연의 자매 공연격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뉴욕 일대에서는 유명한 ‘Shakespeare in the park’ 공연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극장에서 하는 정규 공연정도의 수준을 생각하면 조금 실망하겠지만 무더운 여름 밤 별빛 아래 넓은 잔디밭에서 가족들과 캠핑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가보면 배우들에게 정말 감사할 마음이 들 만큼 뜻밖의 열연과 그동안 몰랐던 다양한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들을 눈과 귀로 경험하는 ‘호강’을 누릴 수 있다. 고전을 탐색해야 할 중고생이 있는 가정이라면 더욱 강추한다. 올해 시즌 공연은 막을 내렸으므로 내년 여름을 기약해보자.
웹사이트 정보 : https://www.shakespearebythesea.org/wp/locations/alisoviej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