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가을의 시작을 의미하는 입추가 있다면 미국에는 노동절, 레이버데이(Labor Day)가 있다.
매년 9월 첫번째 월요일인 레이버데이는 노동자들의 권익과 복지 향상을 위해 제정된 날로 현대에는 바베큐시즌의 끝, 긴 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며 여름을 마무리한다는 의미가 있다.
노동절하면 보통은 5월 1일 메이데이를 떠올리겠지만 캐나다와 미국은 9월이다. 특히 미국의 노동절의 역사를 살펴보면 미국의 그다지 자랑스럽지않은 역사를 마주하게 된다.
산업화 대량생산이 시작되던 시기 노동자들의 삶은 고단하고 위험했다. 애 어른 할것 없이 하루 12시간이 넘는 힘든 노동과 열악한 작업환경은 생명마저 위협할 지경이었다. 사는게 고달프니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라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1869년 이런 생각을 공유한 필라델피아의 의류산업 노동자들이 고귀하고 신성한 노동기사단(Noble and Holy Order of the Knights of Labor) 줄여서 노동기사단(Knights of Labor; KOL)을 조직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캐나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
노동 기사단이 이끈 1884년 미주리 퍼시픽 철도회사 파업은 회사의 임금삭감 저지에 성공했다. 이런 성공에 힘입어 노동 기사단은 1888년에는 6천여개 지부에 70여만 회원을 거느린 거대조직으로 발전했다. 노동 기사단은 성별이나 인종, 나이, 숙련도를 불문하고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 지급과 유청소년 노동 폐지, 그리고 8시간 노동시간 쟁취 같은 목표를 세웠었는데 당시의 관점으로는 상당히 급진적이었다.
캐나다는 1872년에 토론토 인쇄노동조합이 주당 54시간의 노동을 요구하는 파업과 시위가 이어졌고, 1894년에 존 톰슨 총리가 공식적으로 9월의 노동절을 제정했다. 미국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피터 맥과이어(Peter J. McGuire)는 1882년 9월 캐나다의 노동자들의 행사에 참석하고 돌아가 뉴욕에서도 집회를 열었다. 당시 하루 12시간씩, 휴일없이 주 7일 일하는 열악한 근로조건에 항의하기 위해 약 만 명의 노동자와 가족들이 유니언 스퀘어에 모여 뉴욕시 거리를 행진하면서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라고 요구했다. 이 집회가 공식적으로 설명하는 미국 노동절의 뿌리다. 한편으로는 세계 노동 운동사의 주요 사건이 미국에서 벌어졌음에도 이념때문에 철저하게 외면한 결과이기도 하다.
1886년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
1886년 5월 시카고, 파업중이던 농기계공장 ‘맥코믹(McCormick)’사에 경찰들이 난입해서 노동자 4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 중에는 어린 소녀도 있었다. 다음날, 헤이마켓(Haymarket) 광장에 노동자 3,000여 명이 모였다. 집회는 나흘째 이어지고 있었지만 전날 경찰에게 살해당한 노동자들을 추모하며 긴장이 흘렀다.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는 평화 행진을 충돌없이 무사히 마치고 밤 10시 무렵 300여명의 노동자들이 광장에 남았다.
카터 해리슨 시카고 시장 역시 경찰에게 집회를 평화적으로 마무리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퇴근했다. 하지만 경찰 지휘부는 진압 명령을 내렸다. 경찰의 일방적이고 무차별적인 폭력이 이어지던 순간 경찰 진영에서 폭탄이 터져 경관 1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흥분한 경찰들은 총기를 난사했다. 피아구분도 어려울 지경의 무차별 총격으로 경찰 6명을 포함 60명의 사망자를 냈다. 미국 노동 운동사 최악의 참사, 헤이마켓 사건(Haymarket affair) 이다.
헤이마켓 사건의 반향은 컸다. 1890년 국제노동자대회에서 헤이마켓 사건을 기리는 의미에서 공동행사를 벌이기로 결의를 했다. 5월의 노동절 메이데이의 출발점이다. 그러면 정작 사건의 당사자인 미국은 이 메이데이 캠페인에 동참하지 않았을까?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단어 ‘색깔론’ ‘빨갱이’ 와 같은 맥락인 이념때문이었다. 국제노동자대회를 주도한 그룹은 사회주의 인터내셔널로 알려진 노동자계급이었다. 미국이 사회주의자 공산당들이 주도하는 일에 참여할리는 만무했다.
또다시 피로 물든 시카고, 풀먼사 파업(Pullman Strike)
그렇다고 미국의 노동절이 쉽게 얻어진 것은 아니다.
헤이마켓 사건 8년 후 시카고, 미국 철도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풀먼사(Pullman Palace Car Company)는 불황을 이유로 5,800여 종업원 중 절반 이상을 내보내고 임금을 25~40% 삭감하면서 노동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사택의 렌트비는 그대로 받았다. 화가 난 노동자들이 파업을 시작했는데 전미철도노조(American Railway Union; ARU)가 가세하면서 파업이 확대되며 미국의 동서를 잇는 철도가 마비가 됐다.
사태가 이쯤 되면 누구나 예상이 되는 다음 순서는 연방 정부의 개입. 당시 클리블랜드 대통령(Stephen Grover Cleveland, 22대 대통령)은 ‘연방의 우편물 운송이 차질을 빚었다’는 명분 아래 육군 병력 2,000여명을 시카고 일대에 투입됐다. 유혈진압. 그리고는 풀먼 파업 진압 한 달 후 연방의회가 전격적으로 9월의 노동절을 국가 휴일로 지정해버렸다. 나름 노동자들을 향한 유화적인 제스처였으나 공산당들이 주도하는 5월로 지정할만큼 당시 정치인들이 너그럽지는 않았다.
이후 1971년 닉슨 대통령은 주(州)마다 다른 공휴일을 일치시키는 ‘월요일 공휴일법(Uniform Monday Holiday Act)’을 만들고 지금의 노동절인 9월 첫번째 월요일이 확정되었다.
노동자없는 노동절
2016년 기준 미국 노조 가입률은 10.7% (-0.4%,2015)로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미국 노조 가입률은 조사를 시작한 1983년 20.1%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노조 가입률이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로는 노동권법을 인정하는 주정부가 늘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반(反)노조법이라고도 불리는 노동권법(Right to Work Law, RWL)은 노조 가입 및 노조 회비 납부를 강제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이다. 기업 경영자가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근로자를 비교적 좋은 조건에 채용할 수 있어 친기업 노동법으로 불린다.
오늘날 노동절은 또 하나의 세일기간이며 반가운 롱위켄드 중 하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