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이가 곡괭이질도 되지 않는 알라스카의 영구동토(2년 이상의 기간동안 토양의 온도가 물의 어는 점 이하로 유지되어 있는 땅)에서 모닥불을 피워 땅을 녹여가며 하루 종일 땅을 파고 있었다. 심지어 그곳은 이 마을의 공동묘지였다. 나흘을 파내려간 끝에 첫번째 시신을 만났다, 빨간 리본으로 묶은 머리카락까지 온전히 남아 있던 어린 소녀의 시신이었다. 그는 전율과 기쁨을 느끼며 그의 동료들에게 연락을 했다.

으스스한 여름용 엽기 납량 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실화다.신종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과 곧잘 비교되는 스페인독감의 원인균을 밝혀내고자 했던 과학자들의 이야기다. 이틀 후 그의 동료들이 도착해서 더 많은 시신들을 발굴해서 독감 원인균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시신들의 폐 조직을 떼어냈다.

알라스카 영구동토에 있던 마을의 공동묘지를 발굴하던 사람은 스웨덴 출신 요한 훌틴 (Johan Hultin). 웁살라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다 교환학생으로 미국 아이오와대학으로 왔다. 독감에 대한 신체의 면역반응을 연구할 계획이었는데, 1950년 어느날 학교를 방문한 유명한 면역학 학자와의 점심 식사모임에 초대되어 그의 이야기를 귀동냥하게 되었다. 그날 그 자리에 있던 브룩헤이븐 국립 연구소의 윌리엄 헤일(William Hale)박사는 전염병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안해본 일이 없지만 독감의 원인은 여전히 모르겠다며 아직 해보지않은 일은 북쪽의 영구동토에 묻혀있는 시체들 속에 혹시 보존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휴면 상테의 독감바이러스를 찾아 내는 정도라고 지나가듯 이야기를 했는데 훌턴은 요즘 말로  그 이야기에 꽂힌것이다. 결국 일 년 후 훌틴은 알래스카 마을의 공동묘지를 파헤치고 있었다. 그 곳은 1918년 11월 브레비그에 살았던 80명의 주민 중에 독감으로 사망한 72명이 묻힌 곳이다.

1951년 훌틴과 그의 동료들. 왼쪽이 훌틴. Photo credit: Johan Hultin, 출처 : CDC https://www.cdc.gov/flu/pandemic-resources/reconstruction-1918-virus.html

훌턴의 모험심 넘치는 개고생에도 불구하고 당시엔 스페인독감의 원인균-바이러스를 밝혀내는데 실패했다. 과학의 발전이 충분하지않은 탓이었다. 1997년 70대 노인이 된 훌틴은 알라스카 영구동토의 마을 공동묘지 그 자리에 삽을 들고 다시 섰다. 사뭇 다른 장비들 덕분에 46년 전과는 달리 2m 지하에 있던 시신을 쉬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미국에 정착해 의사이자 병리학자의 삶을 살았는데 이번에 훌틴이 중년 여성에게서 얻은 조직을 건네받은 미국 국립 알레르기 전염병 연구소의 분자 병리학자 제프리 토벤버거(Jeffrey Taubenberger) 박사 팀은 2005년 마침내 스페인 독감의 정체를 밝혀낸다. 1918년 독감의 원인 바이러스는 조류인플루엔자 A의 변형인 H1N1이었다고.

전 세계 인구의 약 3분의 1 혹은 약 5억명이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며 1차 세계대전 사망자보다 많은 5000만~1억명의 희생자를 낸  스페인 독감은 1918년 봄부터 시작해서 1919년까지 이어졌다. 한국에서도 ‘무오년 독감’으로 10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자료에 따르면 독감은 1918년 봄부터 3번의 웨이브가 있었으며 미국인 25%가 독감에 걸렸고 67만 5천 여명이 숨졌다. 2018년 CDC의 스페인 독감이 창궐한지 100년이 되던 해  CDC의 캐치프레이즈는 ‘우리는 기억하고(remember), 대비한다(prepare)’였다.

지금의 미국을 보면 기억은 잘했는지 몰라도 대비를 잘한 것 같지는 않다.

*당시 한창 전쟁 중인 나라들은 독감의 유행을 쉬쉬했다. 하지만 전쟁에 참여하지않아 중립국이었던 스페인정부와 언론만이 독감의 유행에 대해 소상히 알렸고 그 댓가는 인류 역사상 가장 독한 전염병에 나라 이름이 붙는 불명예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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