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우연히 동네 친구를 만났다. 초등학교 2학년인 막내 아들이 학교 온라인 수업에 열심히 집중하는 듯하여 기특하다 여겼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수업이 아닌 포트나이트라는 게임을 열심히 하고 있더라는 하소연을 하는게 아닌가. 아들 친구들 중 꽤 많은 아이들이 수업이 아닌 게임에서 따로 만나 수다를 떨면서 게임을 즐기고 있더라며 어이없어했다. 

온라인 수업과 게임뿐만 아니라 소셜활동을 모두 동시에 해내는 멀티테스커(?) 아이들이 늘고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은  태어나면서 모바일을 경험했던 ‘모바일 네이티브’들이다. 이들은 이제 ‘메타버스 네이티브’로 통한다. 사회적 격리 때문에 학교에 갈 수 없는 학생들이 로블록스나 포트나이트 같은 가상의 공간에서 협동해서 무언가를 만들거나 부수면서 서로 마음을 나누고 있다. 이들에게는 메타버스는 일상이 된지 오래이고 오히려 가장 익숙하고 편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메타버스(Metaverse)는 ‘가공’ 혹은 ‘초월’을 의미하는 단어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단어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이다. 온라인 속 3차원 입체 가상세계에서 아바타의 모습으로 구현된 개인들이 서로 소통하고, 돈을 벌고 소비하고, 놀이·업무를 하는 등 현실의 활동을 그대로 할 수 있는 플랫폼을 뜻한다. 즉, 게임, 엔터테인먼트, 기업 간 업무 환경에서 가상공간에 일상의 행위를 복제하는 형태로 광범위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 용어는 1992년 닐 스티븐슨이 쓴 SF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피자 배달로 살아가지만 본업이 해커인 히로 프로타코니스트는 현실세계에서는 존재감이 없지만 그가 만든 가상세계 ‘메타버스’에서는 신적인 존재이다. 주인공은 현실세계에서 사람들이 이상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정신과 육체가 파괴되는 일을 겪자 가상현실로 모든 사람들이 연결된 3차원 인터넷 공간, ‘메타버스’에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마치 2021년 현재를 묘사한 듯한 이 소설의 소재도 놀랍지만 불과 30년도 안되어 공상과학소설이 아닌 현실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메타버스는 게임과 작업 공간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의 트렌드세터(Trendsetter)역할을 하기도 한다. 얼마전 K-pop 월드스타 BTS가 신작 뮤직비디오를 포트나이트 게임공간내에서 공개했는가 하면 블랙핑크는 온라인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끝냈다. 팬들은 블랙핑크 아바타들과 사진을 찍고 기념품을 나눠갖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선거운동에도 게임 기반 메타버스가 활용되어 최근 있었던 미국 대선 당시, 조 바이든 후보는 ‘동물의 숲’이라는 게임플랫폼내에 ‘바이든 섬’을 개장해 선거 캠프를 마련, 누구나 가상 사무실을 방문하게 하여 게이머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내기도 했다.

바이든의 미 대선후보 선거운동을 위한 메타버스 (Biden HQ) 사진출처 : https://www.theverge.com

현재 수많은 기업들이 앞다투어 선점하고 싶어하는 이 메타버스 기술이 교육과 만나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보았다. 아이들이 게임에 몰입하는 강한 집중력과 흥미, 지속성 등을 교육에 적절히 활용한다면 확실히 고전적인 교실 강의실에서 이루어지던 지식의 습득과정은 훨씬 더 쉬워지고 긍정적인 결과를 가질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특성을 활용하여 역사를 배우는 교실에서 직접 외국의 박물관을 방문하여  실제 유물과 똑같은 3D 자료들을 탐색하고,  해양생물을 배우는 시간에 수족관을 방문하는 살아있는 생물들을 마치 그 자리에 있든 듯 관람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현장체험은 아니지만 ‘살아있는’교육을 3차원 온라인 공간에서 실시할 수 있다. CPU나 GPU, 클라우드, 5G 통신, VR과 AR등의 각종 기술의 발달은 단순히 관람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현장에 방문하여 만져보고 만들어보고 체험하는 활동까지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교사는 이제 책 속의 지식을 알려주고 이해시켜주는 ‘교수활동’보다는 지식 습득 과정을 계획하고 관리하며 적절한 자극원을 적용해 학생들의 지적 탐구심과 동기를 유발하는 ‘촉진자’로서의 역할이 더 강조될 것이다.

컴퓨터와 휴대폰이 우리 생활 전반을 지배하고 필수적인 일상으로 파고들었듯이, 메타버스 기술도 더이상 거역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인 것 같다. 더우기 현재의 기술발전은 우리가 변화에 적응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적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기술을 선도하며 준비하거나, 최소한 발빠르게 적응하거나 아니면 그저 뒤쳐져야 하는 선택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긍정적인 효과만 기대할 수 있을까… 메타버스가 지배할 세상에서 살아갈 우리의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되는 것은 왜일까?  놀랍고 새로운 세상이라지만 여전히 흙냄새를 맞고 뛰어다니고  때로는 친구들과 몸싸움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책장을 넘기며 궁금한 것을 찾아보고 지우개똥을 흩뿌리며 공책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는 아이들의 삶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지극히 자연스럽고 인간답게 겪는 나이별 ‘정신과 신체 노동’의 가치를 제 때에 경험하지 못할 아이들이 만나는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사진출처 : https://ozguncangumrah.artstation.com/projects/qgXWP

현실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다 가능하지는 않지만 가상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 경제적, 정치적, 심리적 어려움도 외면할 수 있는 가상의 낙원이자, 도피처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때문에 존재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고전적인 질문에 회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마도 미래교육의 핵심은 가상공간의 아바타가 아닌 자기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소중히 여기고, 개성있고 특별한 자아임을 포기하지 않는 내면의 성장을 돕는 일, 예전에는 성장과 함께 선물처럼 감사히 따라오던 일들이 이제는 교육현장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로 남게될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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